2009년 10월 21일 수요일

유년기를 만나다

한창 영화를 보고 있는데 주머니가 울렸다.
한번 울리고 마는게, 문자다.
긴급한데 문자를 보낼 사람은 없으니, 영화가 끝나고 확인했다.

비담이 멋있는것 같다는, 밑도 없고 그렇다고 끝이 있는 것도 아닌, 그뿐인 문자.

녀석은 초등학교 - 그러니까 그때에는 국민학교 였지만 - 2학년때 우리반에 전학을 왔었다.
진주에서 이사를 왔다는 발랄하기 짝이 없는 녀석. 아마도 짝꿍을 했지 싶다.
녀석 말로는 내가 지한테 그렇게 쌀쌀 맞게 대했다나. 허 참. 기억도 나지 않는 일로 핀잔을 듣다니.
어찌되었건 2학년은 그렇게 지나갔고, 녀석을 다시 만난 것은 5학년때였다.
5학년때는 확실히 녀석과 짝꿍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바꾸는 짝꿍이었는데,
두번 정도 녀석과 짝이었던 것 같다.
여전히 발랄하기 그지없는 녀석과 제법 친했다.
쉬는 시간이면 주변 친구들을 모아서 공기도 하고, 점심시간엔 밥도 같이 먹고.
수업시간에도 뭔 할말이 그리 많다고 내 교과서 빈틈에 빼곡히 필담을 나누곤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책, 특히 교과서는 어쩐지 깨끗하게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집에 와서 그 필담을 다 지우개로 지우곤 했는데,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게 다 추억인데 싶다. 어린맘에 지워버린게 아쉽다.
하긴 그렇다고 초등학교 교과서를 남겨둔 것도 아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고등학교때 연락이 닿았다.
누군가에게 번호를 알게 된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찌되었든 그 뒤로 간간히 일년에 한 두번씩 문자가 오고 갔다.
한동안 뜸하다 싶었는데 지난 달 쯤 대뜸 전화가 왔다.
지 일하고 집에 가는데 심심해서 걸었단다.
그러더니 연락이 좀 자주 된다. 내가 먼저 할 때도 있고.

얼마전에 TV무비 선덕여왕을 보다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물어봤던 일이 있는데,
그랬더니 뜬금없이 비담 멋있다고 문자가 온거다.
나 영화봤다고 했더니 밥사달란다. 어처구니 상실.
알고보니 지 일끝나는 곳이 오목교 근처인데,
내가 영화를 어디서 봤을까 생각해보니까 오목교 근처일 것 같았다나 뭐라나.
어쨌든, 그래서, 마지막으로 본지 10년도 더 된 친구를,
동네 약수터에 물뜨러 가는 복장이라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바라볼 것 같지 않은 차림새를 하고
만났다.
나나 녀석이나 변하지도 않았는지 단박에 서로 알아봤다.

신기할 만큼, 전혀, 그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지가 않았다.
이렇게 편하게, 수다를 떠는 게 얼마만인지.
20대 중반의 여인이 아닌, 유년기의 나를 만난 느낌.
간만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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