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3일 토요일

치과

나 수술받았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중학교 3학년때부터 고3때까지 치아교정을 했더랜다.
근데 이게 아주 교정계의 아이돌 같은 케이스였더라지.
내 오른쪽 어금니가 너무 심하게 눕고 변형되서 도저히
일반 교정으로는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전문의께서는
구강외과로 나를 트랜스퍼, 수술을 시켰다.
즉 막 나기 시작한 사랑니 네개를 한큐에 다 뽑고, 그중 하나는 잘 살려서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어금니를 대체하는 대공사를 치뤘다.
다시말해 지금 내 오른쪽 아래 어금니는 원래 사랑니다.
그렇게 수술을 하고 3년의 교정으로 나머지 이들을 바로잡았다.
사실 지금도 앞니 뒤에는 철사가 붙어있다. 위아래 다. 앞니는 틀어지기 가장 쉬우니까 그냥 평생 하고 있으란다.
지금은 익숙해서 뭐 전혀 있는지 어쩐지 의식도 없다.


아무튼 자가치아이식술이라는 이름의 이 수술은 별로 사례가 없었고, 덕분에 나는 제법 중요한 케이스가 되서 이대목동병원 치과의 '관리'를 그 이후로 몇년간 받았다.

군대에 간 뒤로 귀찮아서 쭉 안가고 있다가 얼마전에 이식한 이쪽 잇몸이 매우 아픈거다. 치과에 갔더니 또 엑스레이 찍고 사진 찍고.
엑스레이는 괜찮은데, 사진찍는게 아주 지랄맞다.
이와 잇몸이 잘 나와야 하니까 입을 여러가지 기구로 벌리고 거울을 밀어넣고 난리도 아니다.
링플래쉬가 장착된 캐논 DSLR로 열심히 찍어내는 의사가운을 입은 남자가 내게 말한다. 혀을 오~ㄹ 해주세요

아놔 어쨌든, 엑스레이 촬영결과 이식된 이가 완벽하게 어금니 자리에 들어 맞지가 않아서 조금 떠있는데, 그부분이 염증에 취약하다는 것. 염증이 생겨서 아프다는 거다.

어제 잇몸을 절개 하고 그 염증을 긁어냈다. 거의 40분간.
근데 이상하게 생각보다 아프지 않았는데도,
중딩때 받았던 수술이 뇌리에 있는지 아주 무서워 혼났다.
마취주사 놓을때도 거의 경직과 경련을 일으키는 턱관절에
의사선생님은 물론 내가 더 놀랐다.
그리고 입 부분에만 구멍 뚫려있고 얼굴을 다 가리는 천을 덮을때부터
그렇게 무섭더라.
입속으로 칼이 들어오고, 뭔가로 잇몸 안에 있는 치아뿌리를 박박 긁고,
드릴이 돌아가고.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어쩐지 정말 희한할 만큼 긴장되고 무섭고 섬찟하고.
손에 뭐 쥘게 없어서 깍지를 끼고 있었는데,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나중에 깍지낀 손이 아프더라.
중간중간에 발가락이 쫙쫙 오그라들기도 하고.
아 진짜 이게 트라우마인가.

뭐 아무튼 오늘은 그쪽 볼이 팅팅 부었다.
오늘은 죽이나 먹어야겠다.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아기 고양이들

야옹야옹 소리에 사무실 뒷 창문을 열어보니 아기 고양이들이 놀고 있었다.



귀여운 것들.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김씨표류기, 무인도시인들의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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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www.cbs.co.kr



김씨표류기는, 어느 한 개인의 표류기가 아니다.
이 영화는 모든 사람이 결국은 각자의 섬에 살고 있으며, 그것을 뛰어넘어 소통하기 위해서는 손을 뻗을 용기와, 누군가 손을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씨'는 밤섬에 표류하는 남자도,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오로지 인터넷과 문자로 밖과 소통하는 여자도 아니다. 실제로 영화 안에서 제목과 엔딩 크레딧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그들이 김씨라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는 없다. 그들은 그저 서울하늘 아래 살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성씨인 김씨가 제목에 떡 붙어있는 것은 그 남자와 그 여자가 김씨라서가 아니라, 이 영화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불안함과 외로움을 대변하고자 하는 의도를 비춰준다. 사는게 모험이라는 포스터의 경쾌한 한마디는, 결국 사는게 표류이고 모두가 그 표류기를 쓰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외침이다.
극단적으로 문명에서 벗어나버린 남자와 극단적으로 문명의 이기를 통해 밖과 소통하는 여자. 인간 대 인간이라는 소통과 관계를 잃어버린 두 사람이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짧다 못해 원초적이기까지한 메세지를 주고 받는 모습은 어쩌면 결국은 이 시대의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문명 이전의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다가섬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 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짜장면, 아니 짜파게티가 유난히도 땡긴다.
이유는 영화를 보시면 안다.

ps 다이나믹 듀오의 '무인도'를 들으시며 읽으시면 더 좋습니다.

2009년 5월 10일 일요일

박쥐, 박찬욱의 Thirst를 말하다.

복수 시리즈라고 불린 박찬욱 감독의 영화 세편은 모두 하나같이 무겁다. 
해학이나 사회에 대한 조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심리, 그 깊은 곳까지 무겁게 파고드는데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영화 박쥐 역시 그 무거움의 연장선상에 머무르고 있다.
성직자라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에서 초탈해야 하는 자가 병으로 뱀파이어가 되어 욕망을 갈구하게 되는 과정, 그리고 성직자의 그러한 욕망을 이용하여 자신의 복수를 이뤄내는 여자. 이 두 인물의 이야기가 얽혀가며 영화는 결국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고자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갈구, 즉 욕망을 말한다.

신의 품에서 떠나 사랑을 택하고, 그 선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상현. 그는 끝까지 사랑을 위해 살고자 하고, 사랑이 망가지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다.
자유를 갈구하고 복수를 이뤄낸 태주. 원하는 자유를 손에 넣자 인간의, 사회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을 사냥하는 극한의 자유를 누리는 야수가 되고자 한다.
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위해 신을 버린 남자와 자유에 대한 사랑과 갈구로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한 여자는 결국에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 박쥐는 결국, Thirst에 대한 이야기다.
해석은 관객의 몫일지라도.
개인적으로 영화의 영어제목 Thirst가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