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4일 화요일

내가 살아 숨쉬는 소리

간밤에 전화가 걸려왔다.
오랜 친구놈의 전화.
별일도 없는데 그냥 했단다. 요새 뭐하고 사나 궁금해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맥주나 한 캔 하자고 했다.
밤이 늦었지만, 어차피 동네에서 보는 거니까, 걸어서 못올 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막차시간 따위 머리에서 지운 채 나섰다.


버스비가 아까울 만큼의 시간을 달렸다.
밤의 도로는 한산했고, 버스는 질주했다.
멋진 오토바이가 지나가기에 사진을 찍었는데, 지나치게 흔들렸다.
지워 버릴까... 하다가, 사정없이 흔들린 이 사진이 지금의 내 모습을 닮아 지우지 못했다.
늘 흔들리고 또 흔들리고.
선명하게 가야할 길이 보였던 것은, 고등학교 때 까지였다.
그때까지는 그저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 '보통'의 삶 끝에 만난 대학은 텅 빈 상자와도 같았다.
나는 그 상자에 무엇을 채운 걸까.
어쩌면 술을 채운 건지도 모르지.
그저 정해진 길을 걷기만 하고 그 이외의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대가는 크다.




친구놈을 만났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주택가는, 역시 한산했고,
PC방 간판들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편의점에 앉아 한잔 하려고 언덕을 넘었는데,
전엔 B편의점이었던 자리가 F편의점으로 바뀌며 안에 있던 의자와 테이블도 없어졌다.
F편의점 망해버려라... 소심하게 속으로 외치며 언덕을 다시 넘었다.
올라가다 본 동네 수퍼마켓에는 평상이 있었다.
5년을 살았던 동네인데 늘상 편의점에 가던지 큰 마트에 가던지 하던 터라,
웃기게도 이사가고 난 뒤의 어느 밤에야 처음으로 가게 된 수퍼마켓의 사장님은 인자해보였다.
'아, 진작에 좀 올것을' 하는 후회가 들 정도로 인자해보였다.

맥주를 골랐다.
냉장고에는 내가 즐겨마시는 아사히나 호가든 따위는 없었다. 버드와이저도, 밀러도, 심지어 스타우트도.
속으로 젠장을 외쳤지만, 까짓꺼 돈도 별로 없는데 차라리 잘됐다.
평상에 앉아서 맥주를 마실 수 있잖냐.
친구는 내가 파란 깡통을 고르자 마자 빨간 깡통을 골랐다.
유머가 있는 놈이다.
평상에 앉아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와, 외로워 죽겠다는 이야기와,
앞으로 어쩔거냐, 몰라 X 하는 시시껄렁하고도 중요한 이야기를 지껄이다가,
지나가는 머리짧은 청년 둘을 보고 고딩일까 군인일까를 토론하고는
일어났다.

집에 오는 길은, 우주처럼 빛났다.


2009. 08. 03. 늦은 밤.

댓글 2개:

  1. 여전히 사진을 잘 찍는 군,, 들렸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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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운짱 - 2009/08/06 00:45
    과찬의 말씀. 어떻게 지내세요? 전화할게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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